2006/11/24 11:10
공지사항
*진주소씨의 연원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의 하백에 봉해지고 기원전2266년 소성이 단군조선에 영속 되었으며 기씨를 소씨로 고쳐서 소씨가 생겼다고 한다. 소곤오(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라고 한다.
소벌도리의 25세손인 소경(577년 출생)은 후손이 없었는데 꿈에 소벌도리가 나타나 진주 도사곡(저동)으로 이사를 하면 9저를 얻을 것이라고 하여 660년 3월 3일(신라 무열왕 7년)에 지금의 진주시 상대동(저동)으로 이사를 한후에 9대에걸쳐 9명의장군을 낳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소벌도리를 원조으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며 소경을 중시조로 하였다. 소경은 관직이 각간에 이르렀고 나라에 공을 세워 656년(무열왕 3년)에 왕이 그의 조상인 소벌도리를 문열왕에 추봉하였다.
*소벌도리
소벌공(蘇伐公)이라고도 불리며, 최씨와 정씨의 도시조이기도 하다. 신라 최고의 문인인 최치원이 소벌공의 24세손이라는 점에서 최씨와 소씨는 고대에 한 뿌리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소경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서는 어릴적 이름인 알천공으로 소개되기도 하며, 선덕여왕시절에 각간 벼슬에 올랐다. 당시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회의 의장으로서 왕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귀족들로부터 여왕 사후에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 받았으나, 김춘추에게 양위하고 경주에서 진주로 이거해 살았다.
*소격달
신라말 고려창건의 주역으로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의 반열에 추대됐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황후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한 최고의 귀족가문이 됐으며, 조선시대에는 소세양을 비롯한 많은 문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를 다수 배출하기도 했다.
*진주소씨 대종회 홈페이지에 기록된 연원
우리 소씨(蘇氏)는 풍이(風夷)의 후예(後裔)로 적제축융(赤帝祝融)의 61세손인 기풍(己豊) 호(號) 곤오(昆吾)께서 동숙신(東肅愼:조선) 불함산(弗咸山:백두산) 북쪽에 소성(蘇城)을 세워 하백(河伯:王)이 되므로 기(己)성을 소(蘇)성으로 개성하여 소씨(蘇氏)가 비로소 생겼으니 소풍공(蘇豊公)이 소씨의 조조(肇祖)이다.
* 소풍공(蘇豊公:BC2417甲辰年生[단군기원 84년전])은 소성의 하백이시고 태하공(太夏公)이라 칭하였다. 후예(後裔)들이 국토(國土)에 소목(蘇木:槿[무궁화])을 심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약하였고 약 이천(二千)여년 동안 삼소(三蘇) 유소국(有蘇國) 후소국(後蘇國)으로 이어왔다고 桓國史 檀君古記에 기재되었다.
* 소백손공(蘇伯孫公:BC240年辛酉生)은 병(秉)자 항렬로 73대조이고 소나라가 망하자 신하(臣下)들을 이끌고 백두대간을 타고 경주(慶州) 형산(兄山)으로 내려와 후진한(後辰韓)의 주(主=王)가 되셨으니 진공(辰公)이라 하며 동근보(東槿譜)에 경주(慶州) 소씨(蘇氏) 시조(始祖)라고 기록되었다.
* 소벌공(蘇伐公:BC129年壬子生)은 소백손공의 5세손이오 육부(六部) 촌장(村長)중에 수장(首長)인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이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養育)시켜 신라(新羅)를 건국(建國)하셨으니 백공(白公), 또 소도리(蘇都利), 소벌도리(蘇伐都利)라 하였다고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라사에 기록되어있다.
* 소경공(蘇慶公:AC577年丁酉生)은 소백손공의 29세손이오, 소벌공의 25세손이시며 병자 항렬은 공의 46세손이다. 신라진덕왕(眞德王)원년에 상대등(上代等=首相)이 되셨고 왕이 서거(逝去)하자 여러 신하들이 공에게 왕이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시고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며 무열왕은 경공에게 보은(報恩)하기 위하여 경공의 선조(先祖)이신 소벌공(蘇伐公)을 문열왕(文烈王)으로 추봉하였고 그후 경공이 진주(晋州) 도사곡으로 이사하시여 터전을 닦으사 진주 소씨의 시조(始祖)가 되셨다고 신라사에 기록이 있다.
* 진주에서 9대 9장군 3대문장등 신라를 빛낸분들이 배출되었고, 아홉번째 격달(格達)장군께서는 고려 왕건을 도와 삼한통일에 큰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이 되셨고 고려에서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과 정승판서 등 명공거경(名公巨卿)이 많이 배출되어 고려에 공헌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우리 소씨는 삼한갑족이라 칭한다.
* 고려가 망함에 소윤공(少尹公)께서 전주로 낙향하여 이서면 소평리에 정착하셨고 소윤공의 증손(曾孫)인 찬성공(贊成公)께서 익산으로 이거하시므로 익산에 우리 소가들이 번창하게 된것이다. 이리하여 우리 소씨(蘇氏)는 어느 성씨(姓氏) 보다도 유구(悠久)한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을 가진 자랑스러운 성씨라는 것을 자각(自覺)하고 긍지(矜持)와 자부심(自負心)을 후손(後孫)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의 하백에 봉해지고 기원전2266년 소성이 단군조선에 영속 되었으며 기씨를 소씨로 고쳐서 소씨가 생겼다고 한다. 소곤오(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라고 한다.
소벌도리의 25세손인 소경(577년 출생)은 후손이 없었는데 꿈에 소벌도리가 나타나 진주 도사곡(저동)으로 이사를 하면 9저를 얻을 것이라고 하여 660년 3월 3일(신라 무열왕 7년)에 지금의 진주시 상대동(저동)으로 이사를 한후에 9대에걸쳐 9명의장군을 낳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소벌도리를 원조으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며 소경을 중시조로 하였다. 소경은 관직이 각간에 이르렀고 나라에 공을 세워 656년(무열왕 3년)에 왕이 그의 조상인 소벌도리를 문열왕에 추봉하였다.
*소벌도리
소벌공(蘇伐公)이라고도 불리며, 최씨와 정씨의 도시조이기도 하다. 신라 최고의 문인인 최치원이 소벌공의 24세손이라는 점에서 최씨와 소씨는 고대에 한 뿌리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소경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서는 어릴적 이름인 알천공으로 소개되기도 하며, 선덕여왕시절에 각간 벼슬에 올랐다. 당시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회의 의장으로서 왕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귀족들로부터 여왕 사후에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 받았으나, 김춘추에게 양위하고 경주에서 진주로 이거해 살았다.
*소격달
신라말 고려창건의 주역으로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의 반열에 추대됐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황후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한 최고의 귀족가문이 됐으며, 조선시대에는 소세양을 비롯한 많은 문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를 다수 배출하기도 했다.
*진주소씨 대종회 홈페이지에 기록된 연원
우리 소씨(蘇氏)는 풍이(風夷)의 후예(後裔)로 적제축융(赤帝祝融)의 61세손인 기풍(己豊) 호(號) 곤오(昆吾)께서 동숙신(東肅愼:조선) 불함산(弗咸山:백두산) 북쪽에 소성(蘇城)을 세워 하백(河伯:王)이 되므로 기(己)성을 소(蘇)성으로 개성하여 소씨(蘇氏)가 비로소 생겼으니 소풍공(蘇豊公)이 소씨의 조조(肇祖)이다.
* 소풍공(蘇豊公:BC2417甲辰年生[단군기원 84년전])은 소성의 하백이시고 태하공(太夏公)이라 칭하였다. 후예(後裔)들이 국토(國土)에 소목(蘇木:槿[무궁화])을 심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약하였고 약 이천(二千)여년 동안 삼소(三蘇) 유소국(有蘇國) 후소국(後蘇國)으로 이어왔다고 桓國史 檀君古記에 기재되었다.
* 소백손공(蘇伯孫公:BC240年辛酉生)은 병(秉)자 항렬로 73대조이고 소나라가 망하자 신하(臣下)들을 이끌고 백두대간을 타고 경주(慶州) 형산(兄山)으로 내려와 후진한(後辰韓)의 주(主=王)가 되셨으니 진공(辰公)이라 하며 동근보(東槿譜)에 경주(慶州) 소씨(蘇氏) 시조(始祖)라고 기록되었다.
* 소벌공(蘇伐公:BC129年壬子生)은 소백손공의 5세손이오 육부(六部) 촌장(村長)중에 수장(首長)인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이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養育)시켜 신라(新羅)를 건국(建國)하셨으니 백공(白公), 또 소도리(蘇都利), 소벌도리(蘇伐都利)라 하였다고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라사에 기록되어있다.
* 소경공(蘇慶公:AC577年丁酉生)은 소백손공의 29세손이오, 소벌공의 25세손이시며 병자 항렬은 공의 46세손이다. 신라진덕왕(眞德王)원년에 상대등(上代等=首相)이 되셨고 왕이 서거(逝去)하자 여러 신하들이 공에게 왕이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시고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며 무열왕은 경공에게 보은(報恩)하기 위하여 경공의 선조(先祖)이신 소벌공(蘇伐公)을 문열왕(文烈王)으로 추봉하였고 그후 경공이 진주(晋州) 도사곡으로 이사하시여 터전을 닦으사 진주 소씨의 시조(始祖)가 되셨다고 신라사에 기록이 있다.
* 진주에서 9대 9장군 3대문장등 신라를 빛낸분들이 배출되었고, 아홉번째 격달(格達)장군께서는 고려 왕건을 도와 삼한통일에 큰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이 되셨고 고려에서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과 정승판서 등 명공거경(名公巨卿)이 많이 배출되어 고려에 공헌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우리 소씨는 삼한갑족이라 칭한다.
* 고려가 망함에 소윤공(少尹公)께서 전주로 낙향하여 이서면 소평리에 정착하셨고 소윤공의 증손(曾孫)인 찬성공(贊成公)께서 익산으로 이거하시므로 익산에 우리 소가들이 번창하게 된것이다. 이리하여 우리 소씨(蘇氏)는 어느 성씨(姓氏) 보다도 유구(悠久)한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을 가진 자랑스러운 성씨라는 것을 자각(自覺)하고 긍지(矜持)와 자부심(自負心)을 후손(後孫)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